들꽃 같은 사람들과 새내기 사모가 함께 엮어나간 잔잔한 이야기, 수필집 '사모여, 숨어서 꽃피우는 이름이여'를 출간한 90년 대 중반, '미우라 아야꼬'에 버금가는 작가라는 찬사를 받고, 기독교 출판과 방송 분야에서 활약했던 작가,  초경-初更-김유순'하나님도 웃게하는 축복덩어리 야곱' 이라는 책을 가지고 우리곁으로 돌아왔습니다.

 

화려한 듯 하지만 쓸쓸하고, 성공한 것 같으나 무너지는 사람들, 엘리트라는 껍데기 아래서 고통 받는 심장들.

애쓰고 힘써보지만 운명이라는 슬픈 굴레를 벗어나지 못해, 한계에 부딪혀 무기력하게 주저앉아 절망하는 사람들.   

하루하루를 그저 그렇게 사는 사람들.

그래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어보고 싶어 몸부림치는 영혼들.

 

바로 오늘을 사는 우리의 모습일지 모릅니다.

이 인생 문제의 시작과 원인, 그리고 시원한 해결책을 모세는 창세기에 적어 놓았습니다.

 

태어나자마자 죽임을 당해야 했던 히브리 사내아이는, 파라오의 공주가 건져 올린 갈대 상자로부터 이집트의 왕궁에서 자라는 동안 학술과 언변에 능하게 되고, 이후 뼈아픈 인생여정 속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 척박한 호렙산 가시떨기 앞에서 교만과 아집과 자기기준의 신발을 벗어 버렸습니다.

지성과 열정으로 다져진 애굽 왕자로서의 삶, 고독한 은둔자로 살며 양을 치던 미디안 광야에서의 감성, 그리고 하나님을 만나 60만 이스라엘 민족을 이끈 위대한 영성을 두루 겸비한 글쓰기의 달인, 모세는 성령의 감동으로 창세기를 썼습니다.

 

그 창세기를 오늘의 이야기로 풀어주는 책.

하나님도 웃게 하는 축복덩어리 야곱이 바로, 오늘의 우리입니다.

 

종교적 교리가 말해주지 못하는 우리의 정체성, 고귀한 혈통으로 태어난 우리가 얼마나 사랑스런 존재인지를, 차분하지만 엄숙하게, 수필 같지만 성경적으로, 쉽고 재미있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작가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면, 우리 모두는

야곱처럼 하나님을 미소 짓게 할것입니다.

 

 

하늘에만 계시던 하나님이 우리의 가슴에 내려와...

순간 사랑에 빠지게 하는 신비하고 아름다운 세계로 당신을 초대합니다.

    

 

                                                     도서출판 HIM

  

인터넷서점 YES24, 알라딘, 교보문고, 영풍문고, 반디앤루니스, 인터파크, 대교리브로, 생명의 말씀사(광화문점, 강남점)에서 지금 만나실 수 있습니다.  (서점을 클릭하시면 바로 연결됩니다)

(정가 : 12,000원 / 온라인 주문시 10% 할인)

<구입문의> TEL : 02-594-9195, 010-8553-8824

HISTORY는 HIS STORY입니다. 우리는 HIM을 높이는 HIS 기업입니다.   -도서출판 H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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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초경-初更 - 초경(初更) 김유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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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게 아낄 것도 없는 검소한 삶이지만, 많지 않은 몇 가지, 쉽게 버릴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손끝에서 날깃날깃해진 성경책, 성도들이 써준 감사로 가득한  편지와 애정 어린 쪽지들, 밑줄을 그어가며 정리해 놓은 말씀 노트, 아직도  풀 내음  풋풋한  마른 들꽃 같은 거...
선교여행지에서 책갈피에 끼워 가져 온 꽃잎들을 식탁 위, 아이보리 색 천위에 주욱 늘어놓고, 두꺼운 유리로 덮어 놓았는데,  보는 이들 마다 경탄하는 즐거움도 있고, 마른 꽃들마다 담겨있는 이야기들을 들려주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이삿짐을 쌀 때면 우선순위로 아끼는 것이지요.

다음으로는 영화 쇼생크 탈출 중에서 주인공 앤디 듀플레인이 지옥 같은 감옥을 떠나 탈출에 성공한 후, 하수구 앞에서 쏟아지는 비를 온 몸으로 맞으며 자유를 누리는...,  바로 그 그림이 있는 판넬입니다.
늘 글을 쓰는 컴퓨터 왼 쪽 벽에 붙여 놓았습니다. 팀 로빈스와 모건 프리만의 명연기가 돋보이는 영화이기도 하지만 탄탄한 스토리 속에 숨겨진 아름다운 음악, 그 감동이 아직도 여전합니다.
촉망받는 은행 중역으로 잘 나가던  앤디는 아내를 살해했다는 누명을 쓴 채  종신형을 받고 악명 높은 쇼생크에 수감됩니다. 차가워 보일 만큼 지적이고 까칠해 보이지만 그의 가슴 속에 흐르는 깊은 회한과 사랑은, 인간애가 메말라버린  감옥을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곳으로 변화시켜갑니다.
주정부를 향한 끈질긴 청원 끝에 받아 낸  교도소 내 도서관 설치, 그 중에 책을 정리하다가 발견된 레코드 한 장이 바로 모차르트의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 중 ‘저녁 산들바람 부드럽게’ 라는 이중창이었습니다.
자신의 배를 채우기 위해서라면 살인과 고문을 서슴지 않는, 비열한 교도소장의 방문을 걸어 잠그고 교도소 내에 연결 된 모든 스피커를 열어서 그 음악을 모두에게 들려줍니다.
폭력과 권모술수로 가득한 인간 막장, 살벌한 교도소의 운동장을 향해 울려 퍼지는 두 여인의 노래에  죄수들 모두 다 넋을 잃고 그 자리에 얼어붙은 듯 서있는 그 장면은 가히 장관을 만들어 냅니다. 이 때, 고난의 길을 걸어 인생의 의미를 알아가는 성숙한 목소리로 모건 프리만이 독백합니다.
‘난 이태리 여자들이 노래하는 것에 아무 생각이 없었다,그저 말로 표현할 수 없이 노래가 아름다웠다.그래서 가슴이 아팠다.꿈에서도 생각할 수 없는 높은 곳에서 아름다운 새 한 마리가, 우리가 갇힌 세상에 날아 들어와 그 벽을 무너뜨린 것  같았다.아주 짧은 한 순간, 쇼생크의 모두는 자유를 느꼈다.’
주인공 앤디의 가슴에 숨겨진 자유에 대한 열망은 소망이라는 메시지를 담고 십 오 척 담장을 뛰어 넘었습니다.그래서 그는 그 소망 하나로 이 십 년의 기다림 끝에 자유를 얻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가슴을 먹먹하게 하는 이 자유마저도 영원한 것이 될 수 없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아름다운 음악이 일시적인 자유를 줄 수도 있고, 긍정적인 생각들이 모여 때로 소망을 만들어 내기도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노래를  만들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사진을 찍고 영화를 만들어서  소망을 이야기하고 자유의 메시지를 전하려 합니다.
 

참 기특한 일이긴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 안에 담겨진 비밀을 모르는 이 세상의 모든 예술은 그저 초등학문에 지나지 않습니다. 예술세계가 풍성할수록 정신적 고뇌가 큰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단 한 사람도 예외 없이 대면해야할 기구한 운명, 그 두려움의 벽을 무너뜨릴 수 있는 근본적인 힘은, 하나님 만나는 길로, 죽음을 이기는 생명으로, 그리고 운명에 갇힌 우리를 자유케 하는 진리로, 이 땅에 오신 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부터만 비롯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4장 6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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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초경-初更 - 초경(初更) 김유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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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간에 회자되는 어느 무명시인의 시 한 구절이 주는 의미가 특별합니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보이는 것이 전과 같지 아니하도다.’

사랑에는 조건이 따르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고,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내어주심으로 우리에 대한 사랑을 확증하셨습니다.

그 사랑이, 자신의 의지가 아닌 하나님의 은혜로 가슴 속에 사무쳐 오는 날,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면,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영광 본체를 버리고 성경대로 이 땅에 오셔서, 성경대로 왜 십자가에서 처절하게 죽으셔야 했는지, 그리고 부활하셔서 성령으로 우리와 지금도 함께 하시기를, 왜 원하시는지 알게 되는 지혜를 얻습니다.

이 지혜를 얻으면 이 세상이 전과는 다르게 보입니다.

세상이 전과 다르게 보인다는 의미는, 자신의 기준이나 논리적 사고에서 벗어나 비로소 영적인 세계를 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대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논리적 율법주의나 맹신적 기복주의, 광신적 신비주의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약속을 보는 언약적인 눈으로 성경을 대하게 됩니다.

스데반의 순교현장에서 교회의 핍박자로 섰던 냉정한 바울은, 다메섹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후 그 눈에서 비늘이 벗겨져서, 새로운 세계를 봄으로써 새로운 사람이 되어, 전에 핍박하던 예수님을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는 사도가 되었습니다.

그는 예수의 추종자라는 이유로 왕과 총독 앞에 초라한 죄수로 세워졌지만, 복음적이고도 진실한 변증을 통해 재판정을 압도하는 승리자가 되어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눈을 뜨니 어둠에서 빛으로, 사단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나아왔습니다. 그 곳에는 죄 사함이 놓여져 있었습니다. 이 일에 있어 나는 증인입니다.’

이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어 영적인 세계를 보게 되고, 어둠과 사단의 권세가 일상의 삶 속에서 실감 될 때 비로소 우리는, 우리에게 찾아오는 갖가지 고통의 문제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알게 되고 보게 됩니다.

문제의 시작이 보일 때 끝이 보이고 또한 해결책을 얻게 될 것입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문제의 시작은 창세기 3장이고 그 문제의 끝, 즉 해결책은 창세기 3장 15절에 숨겨져 있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무당이나 점쟁이가 귀신 들려 작두 타고 점치는 것은 인정하면서 실제로 자신의 생각이나 습관이나 가정 속에 스며들어 삶을 파괴하는 사단의 존재에 대해서는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간교한 들짐승인 뱀 속에 사단이 들어가(계12:9 20:2, 고후 11:3) 아담과 하와에게서 에덴의 축복을 빼앗아 버리고 사랑으로 뭉쳐진 가정을 파괴시켰으며, 결국 그 후손인 가인까지도 최초의 살인자로 전락시켰음을 명백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창세기 3장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아름답고 평화로운 에덴동산에 사단이 찾아와 하와를 유혹합니다.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참으로’는 히브리어로 ‘아프키’라고 합니다. 영어로는 'Really?...really?'라고 묻는 것으로써 상대방으로 하여금 의심하고 적대하도록 유도하는 것입니다.

게다가, 분명 하나님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라고 하셨는데도 ‘모든 나무의 실과’라고 슬쩍 말을 바꿉니다.

이 때 하와의 대답이 걸작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먹지도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분명 하나님께서는 네가 이것을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you will surely die)하셨음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간과해 버립니다.

자신의 동기와 유익에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변질시키고 가감시키는 이 시대의 이단적 사상은 바로 여기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이단은 다른 게 이단이 아닙니다. 처음은 맞는 듯하다가 끝만 살짝 바꿔 우리를 현혹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를 이(異)에 끝 단(端)입니다.

그러고 보면, 전 교황 바오로 2세가 자신의 기준에 따라 말했던 천주교의 ‘창조론적 진화론’에 대해서도 의심해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더하거나 빼는 것을 싫어하시기 때문입니다.(신명기 4:2)

어쨌든 오늘날의 현대교회가 성경을 떠나 철학이나 윤리, 교양 강좌로 전락해 버린 것도 어쩌면 우리 인생 문제의 시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분명 예수님은 이 성경이 ‘나에 대하여 증거한 것’ 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예배드리는 모든 교회는 오직 ‘예수가 그리스도 되심’에 대해서만 말해야 합니다.(요한복음5:39)

예수가 그리스도 되심에 대한 언약이 희미해진 채, 목회자 개인의 부흥 동기나 야망에 따라 행해지는, 율법주의나 신비주의 인본주의에 의한 예배를 30년 40년 드린다고 해도, 심지어 장로나 중직자로 평생 헌신하더라도 인생의 결국이 고통으로 끝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정치적이고 인본적인 동기에 따라, 헤롯이 40년 동안이나 공들여 성전을 지었지만, 황충이 먹어 죽어야 했던 그의 슬픈 말로가 명백히 증거합니다.

이야말로 오늘날의 교인들이 교회 열심히 다니고 실패하는 중대한 이유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와의 마음이 이미 흔들렸음을 눈치 챈 사단은 즉각 하나님과의 사이를 이간시킵니다.

“너희는 절대로 죽지 않는다. 하나님은, 너희가 그 나무 열매를 먹으면 너희의 눈이 밝아지고 하나님처럼 되어서 선과 악을 알게 된다는 것을 알고 그렇게 한 것이다.”

순간 하와의 눈에 비친 열매는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도 할 만큼 탐스럽게 보입니다.

본래 거짓말쟁이에다 거짓의 아비이며 궤계를 써서 멸망시키는 사단(요한복음 8:44, 엡 6:11) 에게 속은 하와는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욕심으로 인해 하나님께 불순종하여 범죄하게 됩니다.

그러자 그들은 눈이 밝아져 수치심과 부끄러움을 느끼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만들어 입습니다.

무화과나무로 옷을 지어 입은 것은 단회적 미봉책을 의미합니다.

말하자면 인간에게 찾아오는 문제를 일시적으로 해결해 보고자 하는 인간 스스로의 몸부림입니다.

이것은 영원한 해결책이 될 수 없습니다.

무화과나무 잎이 말라 바스라져 수치스러움을 완벽하게 가릴 수 없듯이, 인생 문제를 해결해 보려고 인간이 만들어 낸 종교적 교리로는 문제의 해결은커녕, 더 큰 영적 문제를 가져오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지어 입혀 주신 가죽옷만이 완전한 해결책이 될 수 있습니다. (창 3:21)

아담과 하와는 수치와 공포로 인해 수풀 뒤에 숨습니다.

이 때, 하나님은 아담이 ‘어디에 있는지’를 물으십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이 숨어있는 장소를 몰라서 물으신 것이 아니라, ‘함께’ 있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아담이 대답합니다.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 숨었나이다.”

인간은 하나님을 떠나면 즉시 두려움이 찾아옵니다. 그래서 무당을 찾아가 액땜 굿을 하고 점쟁이를 찾아가 앞날을 묻습니다. 이사만 갈래도 날짜와 방향을 봐야하고 죽은 사람 묻을 때도 풍수지리설을 따라야 재앙을 막는다고 생각합니다. 결혼을 할 때도 속궁합 겉궁합에 결혼 날짜를 무당에게 물어서 정하고 부적을 몸에 지니고 다녀야 안심합니다.

심지어 삶은 돼지에게 빌고 마른명태를 걸어놓고 복을 빕니다.

그렇다면 150만의 무속인이 급증하고 신문마다 귀신들려 점치는 무당광고가 그득한데, 왜 우리의 삶은 자꾸만 황폐해지는 것일까요...왜 운명을 거슬리지 못해 무당이 된 그들이 다른 사람들의 앞일은 점치면서 자신의 재앙은 막지 못하는 것일까요...

안타깝지만 바로 이들이 에덴의 축복을 앗아간 사단의 심부름꾼이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을 볼 수 있을 만큼 영적인 눈이 열릴 때, 우리는 비로소 사단의 머리를 밟아 버린 (He will crush your head) 여인의 후손(창 3:15), 메시아 -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사랑하고, 더욱 알게 되며, 그 비밀의 문을 열고 들어갈 천국 열쇠가 보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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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초경-初更 - 초경(初更) 김유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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